기사검색

[정치평론] 승자(勝者)는 있고, 패자(敗者)는 없다!

가 -가 +

윤권종 논설인
기사입력 2021-08-02

 

▲ 전) 선문대학교 교수=윤권종     ©뉴스파고

 

[윤권종=뉴스파고 논설위원, 前)선문대학교 교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1945년 뜨거웠던 그 날을 되새겨 본다. 80여 년이 지났음에도 오늘 우리의 삶과 시간 속에 생생히 살아 남아있다. 우리는 그날을 ‘해방의 날(광복절)’로, 미국은 ‘승전기념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정작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패전일’이 아닌 ‘종전기념일’이라 하고 있다. 분명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1941. 12. 7~1945. 9. 2)에서 패배한 패전국인데 일본에서 패전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와 일본의 표현이 다른 것일까? 같은 한자식 뜻을 공유하고 있는데 무슨 차이일까?

 

패전(敗戰)과 종전(終戰)의 개념은 무슨 차이가 있나? 우리 국민은 이웃 국가에서 벌어지는 혐한(嫌恨)과 그들의 사고에 당혹스럽고 잘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수치심과 부끄러움 때문에 패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임진왜란(1592~1599)에서도 분명 그들은 패배했음에도 패전이란 말을 표현하지 않았다. 白井聡(시라이 사토시)의 '永続敗戦論(2013)'에서 패전과 종전의 개념 설정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하나의 신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으로 일본국민은 ‘일등 국민’으로, 조선인은 ‘이등 국민’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패전으로 대한민국은 독립되고 두 나라는 대등한 위상과 평등한 국민의 지위를 갖게 된다. 그렇지만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국제적 지위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인 국가 비하와 혐한사상이 팽배한 것은 아직도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들에게 패전은 대등한 국가와 평등에 대한 인정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전’이라는 용어에 집착한다. 이것이 국가이고, 인류애가 있는 자들의 정상적인 사고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패전이 없는 역사는 일본제국주의가 지속되는 논리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일본정부와 극우 일본인들은 현재의 한국과 한국인을 식민지 피지배국이며, 피식민지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등신민(二等神民)’의 차별은 당연하며, 이들의 도전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혐한(嫌恨)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논리다?” 나와 우리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궤변(詭辯)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 정부는 이러한 혐한을 용인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패전 이후 외무성 출신으로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吉田茂(요시다 시게루)는 군국주의시대 군벌과 대립하면서 외교 중심의 정치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승전국인 미국은 한국전쟁과 냉전을 거치면서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충실한 정부를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제국주의 전범들을 다시 등용하였으며 그래서 소급된 자(者)가 일급 전범(戰犯) 岸信介(기시 노부스케)이다.

 

기시정부는 그들의 전쟁 범죄를 지우기 위해 패전은 없으며, 단지 전쟁이 끝난 ‘종전’만이 존재한다고 선언하였다. 엄연한 제국주의의 부활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安倍晋三(아베 신조)는 이러한 외할아버지 岸信介(기시 노부스케)의 품에서 일본 부흥을 꿈꾸며 자랐다. 그렇게 일본은 제국주의로 회귀하게 되었으며, 패전의 그림자를 지우고 종전으로 포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은 ‘평화(平和)’를 통해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부흥을 기치로 내세웠다. 여기에 뿌리를 둔 현재의 일본 집권 자민당과 극우주의자들은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혐한’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근원은 ‘종전’에 있다. 2021년 우리의 시간에서도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수정주의로 점철된 일본정부와 극우인사들의 부정적인 對 한국관(韓國觀)과 비아냥 그리고 혐한은 이제 일본의 트랜드이자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한일간의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만만하지 않다. 우리 국민이 전쟁의 폐허에서 최빈국의 처절함을 딛고 일어나 지배국인 일본을 추월하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에 일본인들은 분노한다. 구매력 GDP, 국방, 외교, 첨단산업, 문화 등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대등하거나 앞서가고 있다. 빈곤한 섬나라, 왜소한 일본인은 본디 열등감과 컴프렉스가 많다. 제국주의 패권으로 우월한 ‘아시아의 백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점철된 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와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산업과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에 종속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피식민지 국가에서 ‘강제징용판결’과 ‘NO JAPAN운동’은 그들에게는 경천동지할 노릇일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펼쳐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0(21)년 제32회 도쿄올림픽(7. 23 ~ 8. 8)과 제16회 패럴림픽(8. 24 ~ 9. 5)이 열리는 패전일인 8월 15일을 전·후해서 일본의 부흥을 다시 쓰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과의 애증은 그들의 사고를 바꾸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일본인은 본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국민으로, 우리 국민이 월등한 격차로 세계사의 주역이 될 때 그들은 감히 우리를 조롱하거나 비아냥대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끝나고 상처는 그대로이다.

 

승자(勝者)는 있고, 패자(敗者)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전범(戰犯)도 없다?

 

부끄럽지 않은가? 이들은 어떻게 인류사회와 함께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