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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달달한 소통을 갈구하는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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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사입력 2021-07-26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 경실련 대표]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에서는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깝게’를 내세우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보지 못하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말은 풍성한데 소통은 줄어드는 것 같다. SNS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이 일방적이며 비난성 댓글이 난무한다. 정치권에서는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며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들의 주장에 맞지 않으면 폭력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한가지 예로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 참패 원인 중의 하나로 조국 사태를 언급했다가 ‘초선 5적’으로 몰렸던 의원들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네 딸도 꼭 조민(조국의 딸)처럼 고통받길 바란다.”는 입에 담기 힘든 온갖 협박 문자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자 폭탄을 송영길 당 대표도 받았다니 짐작할 만하다. 내 맘에 들지 않고 우리 편이 아니면 가차 없이 난도질하는 말은 소통의 말이 아니라 소통을 가로막는 반민주적인 흉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원내 경험이 전혀 없는 36세의 이준석이 국민의 힘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우리 헌정사상 30대 당 대표로는 처음이다. 그는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소통 방식으로 국민과 당원들에게 다가갔으며 대변인도 토론을 통해 선발했다. 대변인들은 자기 당의 입장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말은 국민의 정서와 바람을 잘 읽은 진실한 말이라야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언어란 상대방으로부터 공감과 이해와 협력을 얻기 위한 소통의 도구이다. 그러나 그런 언어가 각자의 이익과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비난과 공격의 흉기로 변하고 있는 현실은 코로나 19만큼이나 아프다. 

 

그런 가운데 “백신이 돌려준 노부부의 생일파티(동아일보 2021년 6월 2일)” 이야기는 희망적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6월 1․2차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해 거리 두기 완화조치를 했다. 그 덕택으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오모 씨가 87번째의 생일을 맞아 면회 온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앉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1년 4개월 동안 유리벽 너머로만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손이 왜 이렇게 까매졌어요. 너무 거칠어졌네...”“밭일을 해서 그런가 보지. 당신은 얼굴이 더 밝아져서 보기가 좋아. 생일 축하해요”라며 대화를 나누는 노부부의 표정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인간은 소통하는 존재이다. 소통은 서로 마음을 열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으로 마주 앉아서 하여야 제격이다. 인간이 언어를 만들어낸 것도 소통하기 위함이며, 소통이 있었기에 인간은 지혜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지나치게 이기주의화, 정치화되면서 언어가 소통의 기능보다는 일방적인 공격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마음 아프다. 많은 사람이 상대방의 ‘인기척’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소통은 그 인기척을 들으며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말이다. 천수호 시인의 시 《인기척》을 읽는다. 

 

인기척  

          - 천수호(1964〜 )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처럼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 

인기척이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 

첫 발음의 은밀함으로 

일가를 이루고자 불러세우는 저건 분명 사람의 기척이다 

기어코 여기 와 누운 몸이 있었기에 

뒤척임도 없이 저렇게 인기척을 내는 것 

새 신부 적 여보, 라는 첫말의 엠보싱으로 

저기 말랑히 누웠다 일어나는 기척들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 염두에 없이 

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 

 

  -천수호 『우울은 허밍』(문학동네 시인선 059), 문학 동네, 2018-

  

마음을 열면 감각도 함께 열린다. 감각이 열리면 모든 것에서 ‘인기척’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열린 자의 감각은 심령이 개방되어 죽은 자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 나무와 꽃들과 바람과 새들의 소리에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기척’을 듣는 순간 그들과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나무와 꽃과 바람과 새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정서를 경험하게 되고 마음의 정화를 얻게 된다. 열린 마음과 감각에 의한 소통의 힘이다. 

 

천수호 시인은 시각을 넘어 청각의 기능을 통해 자연과 인간, 세계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자 한다. 그의 시는 사물과 인간들이 쉼 없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가 지닌 맑은 마음을 통해 소통의 길을 찾는 것 같다. 그래서 천수호 시인의 시는 소통의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문명의 차원을 넘은 초월적인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인기척》은 천수호 시인의 시집 『우울은 허밍』을 여는 서시에 해당한다. 시는 총 13행이지만 기승전결의 4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문단인 ‘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갓 결혼”에서부터 “인기척이다”까지로 시를 여는 역할을 한다. 둘째 문단인 ‘승’에 해당하는 부분은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에서 “사람의 기척이다.”까지로 시를 달려 세워가고 있다. 셋째 문단인 ‘전’에 해당하는 부분은 “기어코..”에서부터 “기척들”까지로 시를 심화시키고 있다. 넷째 문단인 “누가”에서부터 “봉분의 인기척”까지로 시의 결론이며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시는 달달한 소통을 갈구하고 있다.


현대문명은 고도화되면서 사람의 청각적 기능보다는 시각적 기능을 최대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청각적 기능과 감각은 때로는 천대받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세대일수록 첨단 문명을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일수록 영상매체에 몰입한다. 특히 청각적 기능도 시각적 기능이 고도화되지 않으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가 세상을 점령해 버렸고 활자 매체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집안에 라디오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강력한 시청각 도구인 텔레비전이 집안을 점령했다. 특히 시각적 기능만의 종이책과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천수호 시인은 청각적 기능을 되살려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물의 소리를 듣고 사물과 소통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과 욕망과 기억과의 소통일 수 있다. 그리고 첨단 문명에 의해 퇴화하는 전통과 자연성의 회복을 갈구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의 첫 부분에서 화자는 봉분의 소리를 듣는다. 살아 있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봉분’이 말하고 있다.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가 나타나”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봉분은 시각을 넘어 청각의 세계인 《인기척》이 된다. 

 

그 다정한 《인기척》은 열린 마음에서만 가능하다. 봉분은 죽은 자의 무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소통보다는 피하려 한다. 그러나 화자는 봉분의 인기척을 듣는다. 그것은 마음을 열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귀는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한,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봉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초월적이다. 인간의 마음과 귀가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 단테의 『신곡』에서처럼 그 어떤 신비한 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그 소리를 통해 깨달음과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봉분의 인기척을 듣는 순간 화자는 초월적일 수 있다. 

 

길이 없는 곳에서 불쑥 나타나 말을 건네는 봉분의 소리는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처럼” 순수하고 부끄럽고 달짝지근하다.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할 때 얼마나 부끄러울까? 얼굴은 발그레 붉어지고 말소리는 목구멍을 넘어오기 어렵고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든 밤이슬을 맞은 꽃잎 같을 것이다. 그러나 새신랑과 소통하고 무엇인가 엮어가기 위해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기에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내는 말인 “여보”라는 말은 신선하면서도 값진 것이다. 

 

둘째 문단은 새 신부의 첫 소통의 언어인 “여보”라는 말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에서 “여보”라는 말은 “봉긋한 입술”이 의미하듯 아직 누구도 범접하지 않은 순수하고 어린 모습이다. 깨끗하고 청순하다. 그러기에 그 첫 발음은 은밀하다. 부끄럽기에 누가 들으면 안 된다. 오직 상대인 신랑에게만 전해져야 한다. 그런데 그건 그저 나오는 말이 아니다. 오직 “일가를 이루고자 불러세우는” 말이다. 그것은 신랑에게 보내는 《인기척》이다. 화자는 봉분에게서 그런 다정한 《인기척》을 듣는다. 

 

여기서 “일가를 이루고자 불러세우는” 말인 “여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새신부가 “여보”라는 인기척을 내는 목적은 곧 “일가를 이루고자”하는 데 있다. 일가는 하나의 가족 공동체이다. 남녀가 만나 서로가 “여보”라고 불러줄 때 비로소 사랑의 공동체인 “일가”가 된다. 그리고 그 일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발전해 간다. 일가란 곧 사랑의 공동체이며 사랑의 결합이다.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곧 “여보”라는 《인기척》이다. 그것은 소통이며 그 소통이 있었기에 일가를 이룰 수 있다. “여보”는 소통을 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순수하고 다정한 보편의 말인 《인기척》이다.

  

그 인기척은 어떤 인기척인가? 세 번째 문단에서 “기어코 여기 와 누운 몸이 있었기에/ 뒤척임도 없이 저렇게 인기척을 내는 것”은 죽은 자의 몸이다. “기어코”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의지적이자 운명적임을 말해준다. 죽은 몸이었기에 여기와 누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뒤척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은 자가 《인기척》을 내고 있다, 죽음이 다시 “새 신부 적 여보, 라는 첫말의 엠보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화자는 여기서 다시 “여보”라는 말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엠보싱’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그러기에 “여보”라는 인기척은 “저기 말랑히 누웠다 일어나는 기척들”이다. 무덤은 뒤척임도 없이 딱딱하지만, 인기척은 말랑히 누웠다가 일어난다. 말랑히 누웠다가 일어난다는 것은 언제라도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기척들’은 복수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봉분이 여럿일 수 있지만 하나의 봉분에서도 다양한 기척들이 들린다. 그 소리는 현실의 소리라기보다는 화자가 듣는 내면의 소리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봉분의 《인기척》은 시간과 공간, 체면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 염두에 없이/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이다. 여기서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는 미래적이다. “여보”라고 부를 때 지금 당장 옆에 아무도 없지만 ‘누가 올까 누가 갈까’를 염두에 두면 두렵고 부끄러워진다.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는 과거형이지만, 시간의 연속성을 말하고 있다. 이것저것 따지면 진정한 소통을 이루어 낼 수 없다. 그러기에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 염두에 없”다. 만약 이런저런 조건을 다 따지다 보면 《인기척》을 낼 수도 없고 《인기척》을 들을 수도 없다. 그러면 소통은 물 건너간다. 새 신부가 처음 “여보”라고 할 때 주변 분위기와 상황, 모든 것을 따지고 염두에 두다 보면 신랑에게 평생 살갑게 “여보”라고 다가갈 수 없다. 그것은 신랑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소통, 진정한 사랑은 이기심과 자존심을 넘어설 때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은 달달한 소통을 갈구하는 화자와 세상 모든 사람의 욕구의 표현이다. 

 

시에서 반복되는 두 언어 “여보”와 “인기척”은 특정 대상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 열린 언어이다. 그것은 마치 만해 한용운이 말하는 “님”과 같다. 만해는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의 서두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만해의 님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그리운 것 모두를 지칭하는 열린 대상이다. 천수호의 시 《인기척》에서 말하는 “여보”라는 말도 이와 같다. 그래서 “여보”라는 말은 신랑과 신부만 하는 말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만 하는 말이 아니라, 소통을 향한 달달하고 다정한 언어의 상징이다. “인기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냥 내는 기척이 아니라 모든 대상을 향한 소통의 언어이다. 그 둘의 대상은 범인간적, 범자연적인 메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을 위해선 “여보”라는 열리고 다정한 다가감의 말처럼 달콤해야 하며 《인기척》처럼 요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김하나, 황선우가 쓴 에세이집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 둘이 함께 아파트를 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하나 작가는(45)는 19세부터 줄곧 서울에서 혼자 살아왔다. 동거인 황선우 작가(44) 역시 18세부터 서울에서 홀로 살아왔다. 혼밥과 혼잠으로 이골났던 둘은 어느 날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면 좋겠다는 생각의 일치에 함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함께 산다. 김하나는 말한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한 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진다. 서로의 인기척에 자연스레 잠이 깨고 집에서 매일같이 인사가 오가는 게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황선우 역시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나는 동거인에게서 배워 간다”고 말한다. 함께 사는 일이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들은 소통하고, 위로하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살아간다. 동병상린(同病相燐) 즉 함께 겪어보아야 삶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위안이다.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이재호 옮김, 솔, 1998)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가난한 청년 서생이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환청을 사실로 믿고 만복사의 탑돌이에 참여하여 만난 죽은 혼령의 아가씨와 지고한 사랑을 나누고, 청년 서생이 사랑한 아가씨는 그 사랑의 덕택에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환생하였다는 이야기 역시 마음을 열고 순수한 소원이 있으면 소통은 영역을 초월할 수 있으며 삶의 세계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타인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소통하고 내면에 응답하기 위해 소통한다. 그러나 이기주의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은 그런 소통이 아니라 지배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언어를 폭탄처럼 날린다. 누군가를 제압하고 이겨 이익을 독점하고 군림하기 위한 비난과 일방적 주장, 말과 메시지는 소통이 아니라 폭력이다. 진정한 소통은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위로와 치유, 성찰과 화해, 성장의 기능을 지닌다. 천수호의 시 《인기척》에서 화자가 듣고 소통하고자 하는 “인기척”은 이익과 지배와 독점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의 새 신부가 처음 “여보”라고 하는 말처럼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말이다. 그런 말과 인기척이 있어야 세상은 풍성해지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소통은 인간 활동의 근원이며 발전의 동력이다. 인류는 소통할 줄 알았기에 지혜를 키우고 성찰을 통해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소통은 소외된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인간성을 성숙시키는 소중한 통로이다. 소통의 단절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소통이 단절된 세상은 곳곳이 병든 세상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달달한 소통을 갈구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소통을 가로막는 언어가 아닌 소통을 여는 마음과 언어를 열기를 바란다.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도 마음을 열고 상대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달달한 소통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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