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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청포도》, 고향을 그리는 지사(志士)의 간절한 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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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사입력 2020-09-25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본격적인 가을이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산과 들판의 오색 찬란한 물결, 시원한 날씨, 푸른 하늘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가이자 희곡 작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자’ ‘길을 가는 자’라고 하면서 인간의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인간 본성이라고 했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추석은 객지에 살던 사람이 고향으로 떠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 떠남은 마음에 간직한 곳, 근원을 향한 여행이며, 그 여행을 통해 추억을 되새기고 사랑을 나누며 위로를 받는 것뿐 아니라, 부모님과 조상, 친지들에게 사람도리를 실천한다. 그런데 이번 추석엔 코로나 19로 인해 고향 여행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떠나고 싶은 인간의 본성으로 제주를 비롯한 관광지의 예약은 밀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한 지인이 추석을 맞이하는 선물로 청포도 한 상자를 보내왔다. 모양도 색깔도 맛도 좋았다. 그 혹독한 여름 장마와 태풍에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생산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하우스 재배라고 했다.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힘의 소산이었다.

 

몇 해 전 밭에 청포도를 포함하여 캠벨 등 다섯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었다. 제법 커서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다. 올해는 포도를 제대로 따 먹을까 했더니 여름 장마에 다 녹아내렸다. 그나마 달린 것도 물러터져 먹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포도송이를 모두 잘라 버렸다. 포도 몇 송이를 먹지 못했다. 청포도는 한 송이도 못 먹었다. 

 

7월부터 틈이 날 때마다 이육사의 시와 평전을 읽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 《광야》, 《황혼》, 《절정》 등 10여 수는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다시 《청포도》를 읽으며 추석을 맞으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소망을 생각했다. 그런데 2020년 지금, 시인 이육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장맛비에 떨어지고 터진 포도알처럼 전설도 떨어지고 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청포도

 

―이육사(1904∼1944)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이동영 편저 『한국현대시인연구 ❷ 이육사』 문학 세계사,1992-

  

우린 이육사를 애국 시인과 독립투사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삶의 내면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한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는 시의 제목임과 동시에 뒷날 발간된 이육사 시집(1964년)의 제목이기도 하다. 

 

《청포도》는 이육사가 1939년(36세) 가을, 서울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할 무렵 발표한 시로 알려져 있다. 그해 그는 《청포도》 《절정》 《남한산성》 등의 시 작품과 「영화에 대한 문화적 촉망」 「시나리오 문학의 특징」 등 영화 예술 관계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청포도》는 뒷날 유고로 남아 발표된 유명한 시《광야》의 전신으로 《광야》는 《청포도》의 변형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광야는 1942년〜1943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어쨌든 《청포도》에는 북경이란 이국 만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지사(志士)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좋은 시를 읽으면 삶을 성찰하고 힘이 솟으며 희망이 넘친다. 두 행씩 총 6연으로 이루어졌으며, 1연과 2연, 3연과 4연, 5연과 6연, 두 연씩 한 세트다. 시는 매우 세련되고 절제감과 속도감이 넘친다. 그래서 《광야》처럼 단숨에 읊을 수 있다. 그리고 긴 여운과 함께 강한 지향성과 그리움을 안겨준다. 이육사의 거의 모든 시에는 독립지사답게 절제감과 속도감, 그리고 절규하듯 넘치는 힘이 숨어 있다. 

 

제1연에서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다. 그 7월이 양력으로 7월이었을까? 음력으로 7월이었을까?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음력으로 7월이었을 것 같다, 당시는 양력보다 음력을 많이 사용하던 전통이 있었다. 특히, 농촌에서는 주로 음력을 사용했으며 음력의 사용은 양력 사용을 강조하는 일제에 대한 반발로 전통의 지킴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음력으로 7월은 양력으로 8월 말이나 9월쯤 된다. 청포도는 양력으로 9월이 되어야 익는다. 그리고 9월엔 대체로 추석이 끼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에는 일본 헌병대에 수배를 받는 몸이라 추석을 앞두고 고향도 마음대로 못 가는 지사(志士)의 애절한 마음과 독립의지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그리는 고향은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있는 곳이다. 여기엔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가야 할 이유가 담겨 있다. ‘주저리주저리 열린 이 마을 전설’은 무엇일까? 전통 사회에서 고향은 먼 조상 때부터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이다. 고향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숨결이 배어 있고, 형제의 우애와 친족간의 끈끈한 인연과 사연이 전설처럼 서려 있다. 그 고향엔 어린 날부터 꾸어 온 꿈과 소망이 있다. 그래서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 고향”은 내 존재의 뿌리이며, 인드라의 구슬 같은 존재의 관계망이기도 하다. 

 

시 《청포도》에서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라고 한 것은 이육사의 고향과 가계, 성장과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이다. 그의 출생지이자 성장지 안동시 도산면 원촌은 퇴계 선생의 손자 삼 형제 중 막내인 동암(東巖) 이영도(李詠道)의 증손 원대처사(遠臺處士)가 처음 자리잡아 살아 온 그 자손만이 사는 곳이다. 마을은 태백산맥이 낙동강을 끼고 내려오면서 두 가지가 되어 한 가지는 도산서원의 주산인 영지산(靈芝山)이 되고, 한로연산은 활체와 같고 앞의 강물은 활줄과 같이 된 그 속에 백여 호가 산다, 산 주위를 왕모산이라 하는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에 모후를 모시고 피난하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쉬어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이름 되었고, 지금도 그 생터가 남아 있다. 동네 앞 방축 중간쯤에는 200년 넘은 느티나무와 고목이 있어 마을의 전통을 자랑할 만하다. 

 

이육사는 국운이 기울던 1910년에 7살이었고 1919년 3.1 운동 때 16살이었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조부 이중식은 집안 비복들을 모두 풀어 준 다음 그 문서들을 소각하여 버렸고 벼슬을 거부하였으며 광복할 일만 도모하였다. 이육사의 5형제는 우애를 돈독히 다지며 성장했다. 1925년 항일운동 단체에 3형제가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7년 장진홍의 조선은행 폭탄 투척사건에 혐의를 받고 3형제가 투옥되어 무참한 고문을 받을 때도 형제는 서로 의지했다. 이육사는 1929년 광주학생사건에 연류되어 구속되는 등 수많은 구속과 고문을 받아 몸이 쇠락했다. 후에 북경을 빈번히 다녔으며 1932년 10월 22일 북경 조선군관학교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 훈련반에 입교하여 다음 해 4월 22일 제1기생으로 졸업했다. 그후 정치조에 소속되었고 권총 사격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육사의 학력은 일본에 1년간 다녀왔으나 공부한 흔적은 없고 북경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것이 최종 학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육사는 1944년 1월 16일 새벽 5시 북경 감옥에서 41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동영의 <이육사의 항일운동과 생애>, 『한국현대시인연구 ❷ 이육사』 문학 세계사,1992) 

 

그런 시인의 고향은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혈연공동체였다. 의미를 확대하면 그가 말하는 내 고장은 단군의 피가 흐르는 민족공동체의 고장인 한반도일 수 있다. 그런 고장엔 꿈의 상징인 먼데 하늘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있다. 알알이 꿈과 전설이 깃든 곳이다. 비록 일제의 폭압으로 암울한 현실이지만 과거의 평화로웠던 시기를 회상하면서 기필코 독립을 이루어 그 전설이 대를 이어 주저리주저리 열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소망은 아름다운 언어로 치환되어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의인화된 “하늘 밑 푸른 바다”는 청포도의 푸른 이미지와 함께 아름다운 희망이다. 그것이 가슴을 열고 왔으니 희망이 열렸다. “곱게 밀려오는 흰 돛단배”는 희망을 싣고 오는 순결한 배이다. 푸름과 흰색의 조화는 희망과 순결의 기막힌 조화다. 수배와 감시를 벗어난 자유의 몸을 바라는 시인의 소망, 조국 광복의 소망이 고요한 평화로 다가오기를 소망한다. 

 

그때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손님은 지친 몸이지만 품위와 정체성을 간직하고 왔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마을의 예언적 수호신 같은 은마(銀馬)일 수도 있고 조국일 수 있다. 왜 고달픈가? 시인은 만주벌판을 떠다녀 지쳐 있고, 수배로 피해 다녀야 하는 신세이니 지쳐 있을 수밖에 없다. 고장은 수탈로 피폐해졌고, 조국은 일제의 폭압으로 지쳐 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청포를 입고 찾아왔다. 청포는 전통적이며 청결하며 시인의 정체성이자 마을과 민족의 정체성이다. 손님은 순수한 우리 전통과 맥을 간직하고 온 것이다. ‘청포를 입고 찾아온 손님’은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름다운 귀향의 상상이다. 

 

아름다운 귀향에는 잔치를 벌인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은 아름다운 귀향에 대한 잔치이다. 기다리던 손님이 고난을 이겨내고 청포를 입고 고향으로 왔으니 얼마나 기쁜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다리던 사람이 오면 반가움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한다. 포도는 전설이며 역사이다. 귀한 사람과 함께 잔치를 벌이며 전설과 역사의 이야기에 흠뻑 젖으며 날이 새는 줄 모른다, 그러니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지 않은가? 

 

아름다운 잔치를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 포도를 따 먹으며 “함뿍 젖은 손”, 고향 전설에 흠뻑 젖은 마음을 고이 간직하며 닦아줄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귀한 손님이 쉬며 전설을 이어가게 할 자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깨끗해야 하며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하고 주문한다. “은쟁반”은 깨끗하고 독을 분별할 수 있는 순수함을 지녔다. “하이얀 모시 수건”은 순수하고 순결함이다. 지고한 선비의 상징이자.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의 상징일 수 있다. 

 

이 시는 한 폭의 수채화다. 그 수채화 속에 이국을 떠도는 지사의 강렬한 소망을 담았다. 수채화의 물감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사람마다 소망이 가슴에서 솟아난다. 이 시는 지금 상황에서도 유효하다. 세상이 어려울 때 비관에 빠지지 말고 자신이 존재하게 된 정체성과 존재망을 생각하면서 소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안타깝다. 신세대들은 고장이 없고 고향이 어딘지 모른다. 도시에서 태어나 여러 번 이사하면서 자란 세대들에게 시에서 말하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마을’은 없다. 고향에 대한 애착과 강한 소망도 마음에 자라지 않는다. 그런 존재의 관계망이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산업화와 문명화란 이름으로 급속하게 진행되는 도시화는 고향 해체를 급속하게 가져오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지방 소멸 즉 고향 해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정책적으로는 매우 미약하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7년 이후부터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이면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고려자 가구 비중(고령자 가구/총가구×100)이 2000년 11.9%(173만 4,000명/1,450만 7,000명×100)였던 것이 2019년에는 21.8%(438만 8,000명/2,011만 6,000명×100)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2045년에는 47.9%(1074만 7,000명/2,245만 6,000명 ×100)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통계청의 2019 농림어업조사 결과(2020.4.19. 농민신문)에 의하면, 40세 미만 농가 경영주는 6,829명에 그쳤다. 2018년 7,624명보다 10% 줄었으며, 41세~69세까지 모두 줄고 70세 이상만 줄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표한 2019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의하면, 국토의 16%인 도시에 인구의 91%가 쏠려 있으며, 농어촌은 9%만 살고 있는데 농어촌 인구의 향도(向都) 현상은 지속화될 것이라 한다. 이는 농어촌에 젊은이들은 계속 줄고 고령화만 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젊은이가 줄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것은 농어촌 출산은 줄고 인구는 감소하며 해체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앞서 시에서 말한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마을”은 대를 이어 살아온 농어촌 마을이며 그곳은 태어나고 성장한 곳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관련된 수많은 인연이 인드라망처럼 얽히고 설켜 전통과 사연이 전설처럼 이어져 온 곳이다. 그러나 농어촌의 해체는 바로 그런 존재와 인연의 관계망이 해체되고, 그 전통과 사연의 맥이 끊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매년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소에 벌초하러 가면, 일가친척과 친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큰 마을을 이루고 살며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던 마을엔, 갈 때마다 하나둘씩 폐가(廢家)가 늘어나고 녹음방초만 무성한 폐허의 마을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글픈 일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인연의 끈이 끊어진 곳에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육사의 《청포도》를 읽으며 고향 해체의 아픔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애국지사가 먼 이국땅에서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는 마음과 함께 전설의 맥이 이어지는 고향이 되살아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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