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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그 많던 《종달새》는 어디로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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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사입력 2020-05-31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19가 아무리 세상을 험하게 한다고 해도 봄이 가기 전에 얼굴을 보자고 했다. 객지로 일찍 떠난 나는 초등학교 동기 전체 모임엔 서먹한 감이 있어 잘 가지 않지만, 자주 만나던 친구 몇 명끼리 대전에서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친구가 프로그램을 기막히게 짰다. 6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에 고향이 그리운 것은 인간 본연의 귀소본능인 모양이다. 친구는 10시경 대전에서 만나 자기 차에 우리 4명을 태우고 고향으로 향했다. 친구들 각자의 고향 동네를 돌아보고, 고향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헤어진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갔다. 가장 먼저 나의 고향 동네에 도착했다. 동네 어귀에 차를 세우고 친구는 나에게 고향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마을 어귀에서 고향 집이 있는 곳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친구가 또 빨리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때 나는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 고향 집에 가면 난 울 것 같아. 고향 집은 거의 폐허 수준이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어서 지금은 관리가 너무 어려워. 어쩌다가 와서 손을 보지만 감당이 안 돼. 집에 가면 엄마 생각이 너무 날 것 같아.” 잠시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고여 애써 감추었다. 나는 쓸쓸하게 서 있다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고향 동네는 어귀에서부터 인기척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고향 집 옆집에 나보다 한참 젊은 노총각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그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떠났다.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 노총각은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베트남 여성은 몇 년 살다가 야반도주했다고 했다. 그래서 홀로 부모님을 보시고 살면서 우리 집도 관리해 주었는데 그마저 없으니 이제 관리가 더 어려웠다.

 

고향 마을은 옛날과는 달리 풀과 나무들만 무성하고 어귀의 논밭엔 대부분 나무가 심겨 있었다. 옛날 고향 마을의 5월엔 거의 보리밭이었다. 보리 내음이 코를 찌르고 종달새의 노랫소리는 귀를 즐겁게 했다. 높이 날다가 곤두박질을 하는 종달새의 모습은 신기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간 고향엔 보리밭은 보이지 않고 종달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고향 동네를 떠나 다른 친구의 고향 마을을 돌고 돌아 점심을 먹고 다시 대전으로 올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이 허전했다. 그리고 정지용의 시 《종달새》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린 시절 고향의 정취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종달새

 

-정지용(1902〜1950)-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 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정지용 『정지용 시집』((주)미르북컴퍼니)-

  

이 시의 주인공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어린 시절이 더 그립다. 그리고 유년의 온갖 추억이 솟구친다. 특히 가장 포근했던 어머니의 품이 그립다. 

 

내가 정지용의 시 《종달새》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고향을 떠나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 지났다. 정지용의 시집을 처음 읽으며 가슴에 와 닿은 시(詩)중의 하나였다. 천진난만한 느낌을 주는 이 짧은 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릴 적 고향의 풍경을 그림처럼 마음속에 그리게 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 시를 읽는다. 그런데 이 시는 읽은 때마다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특히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상실의 아픔이다.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는 시의 화자이다. ‘삼동 내’는 추위가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한겨울이다. “내”는 “내내”의 줄임말이다. 옛날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 방 안이 따뜻할 리 없다. 특히 엄마 없는 어린아이에게 겨울은 혹독하게 춥다. 아이는 한겨울 동안을 방 안에서 얼면서 보냈다. 고독했다. 그런데 봄이 왔다. 밖으로 나왔다. 봄은 고독한 소년에게 해방이었다. 

 

아이는 들판으로 향했다. 봄기운은 쌀쌀하지만 따뜻했다. 보리 내음이 향긋하고 들판도 푸르다. 곳곳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리 지리 지리리...” 하며 날고 있었다. 신기하여 종달새를 따라가기도 하고 높이 솟다가 급강하하는 종달새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종달새의 그 “지리 지리 지리리...”하는 소리가 자기를 놀려 대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아이는 “왜 저리 놀려 대누”하고 홀로 중얼거리며 푸념을 한다. 왜일까? 

 

이유는 다음 연에서 분명해진다.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 대누” 아이에겐 엄마가 없다. 언제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자란 모양이다. 그런 아이에게 종달새는 자기를 놀려대는 야속한 친구이다. 

 

‘해바른 봄날’은 따뜻하고 작은 냇물이 녹아 흐르니 좋아서 밖으로 나왔지만, 종달새까지 놀려 대니 마음 둘 곳이 없다. 그렇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틀어박혀 있을 수 없다. 그때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찾았다. 바로 모래톱이다. 그래서 아이는 ‘그래 이 모래톱하고 한종일 나홀로 놀자’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아이는 이제 상실(엄마 없는 서러움과 고독)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찾았다. 고독과 체념을 넘어 나만의 새로운 세계로의 승화를 결정한다. 그래서 이 시는 마음을 울린다. 

 

시를 좀 더 살펴보자. 위의 시에서 대표적인 이미지인 종달새는 무엇일까? 종달새는 따뜻한 봄날, 논밭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텃새였다. 종달새는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산란기를 맞이한다. 그래서 애절한 구애의 노래를 부른다. 애절한 노랫소리가 온 들판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보리가 약 30cm쯤 자란 보리밭 구석 은밀한 곳에는 종달새의 둥우리가 있었다. 종달새는 거기에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했다. 어린 날 보리밭을 뒤지며 그 새끼를 잡으러 다닌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들판에서 그 애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들판에 보리밭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보리밭도 종달새와 함께 고향과 봄을 알리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종달새의 노랫소리는 우리의 향토적 정서와 함께 문학 속에서 봄을 알리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옛날에는 ‘노고지리’라고 불렸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남구만(1629:인조 7년〜1711:숙종37년)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니/재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에서 ‘노고지리’는 봄을 알림과 동시에 어서 나가 일을 하라는 근면을 재촉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지용의 시 《종달새》에서 종달새는 봄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친구이자 ‘엄마 없음’을 알리는 매개체이다. 아이에게 종달새의 “지리 지리 지리리...”하는 소리는 ‘너 엄마도 없지’ 하며 놀려 대는 엄마 없음을 확인시키는 야속한 친구이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의성어 “지리 지리 지리리...”이다. 의성어는 듣는 사람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만약 그것이 누구나 말하고 표현하는 대로 들리고 표현된다면 시의 맛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는 그의 시 <종달새>에서 “-비일 비일 종종종”으로 표현했다. (종달새, 종달새/ 너 어디서 우느냐/보오얀 봄 하늘에/봐도 봐도 없건만/-비일 비일 종종종/비일비일 종종종) 정지용의 시에서 “지리 지리 지리리...”는 봄과 엄마 없음을 알리는 이중언어이다. 

 

마지막으로 모래톱의 이미지이다. 모래톱은 작은 냇가, 도랑 등에 생긴다. 아이들은 흙장난으로 노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친구 없이 심심할수록 흙장난을 많이 했다. 흙장난에서 모래톱은 매우 좋은 도구이다. 일반 흙과는 달리 부드러운 감각에서 정서적 위안도 준다. 그래서 모래톱은 시인에게 엄마 없음의 고독과 슬픔을 달래고 엄마 없음을 놀려 대는 종달새(다른 친구들)의 따돌림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며 안식처이다. 종달새와 같이 모래톱은 전통적인 고향에 대한 강한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상실을 경험한다. 그 상실 중에서 가장 큰 상실은 어머니의 상실이다. 특히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상실과 부재는 충격적인 아픔이다. 어머니 없는 아이는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는 절대적 존재이며 영원성을 지닌다. 절대적이며 영원성을 지닌 존재인 어머니는 아이의 성장과 사유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시에서 아이는 그 절대적인 영원성의 존재를 상실하므로 ‘종달새가 놀려 대지 않는대도 자기를 놀려 댄다’고 생각할 만큼 삶과 사유의 분열을 경험한다. 아이는 이제 영원성의 아우라인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없다.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어머니의 상실이건 사랑하는 연인의 상실이건 인간이 겪는 모든 상실은 강한 아픔을 준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세계로 나아 간다. 상실로 인해 가장 먼저 겪는 것은 아픔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고독과 방황이다. 이 경험이 오래가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 다음 단계로 갈 때는 여러 갈래가 존재한다. 어떤 이는 고독과 방황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거나 인생을 비관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실된 현실을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여기서도 어떤 이는 체념으로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그 체념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 가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승화의 단계로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상실은 인간을 고독과 방황에 빠지게도 하지만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상실의 승화를 통해 더욱 위대해지기도 한다. 시에서 ‘모래톱하고 한종일 나홀로 놀자’는 상실의 승화를 향한 서막이요 다짐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 역시 상실의 시대였다. 어머니의 상실만 아니라 일제의 수탈과 피폐로 인한 조국과 고향의 상실이다. ‘어린아이가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알고 느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 비친 어른들의 절망적인 모습은 스스로 겪는 것 이상의 두려움일 수 있다.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 시인이 쓴 시에서 고향의 모습을 자주 그리는 것은 그 상실의 아픔을 승화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시인의 시에서 전통적인 민요시의 형태를 띠는 것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정지용의 시 《종달새》를 다시 읽으며 분명히 느끼는 것은 상실되어가는 고향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강한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어머니의 상실 때문이다. 고향과 어머니의 사실은 전통의 상실이기도 하다. 고향은 어머니의 상실과 함께 급속하게 해체되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고향은 거의 늙은 부모님만 남게 되었고 그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하나둘씩 폐허가 되어간다. 그렇게 폐허가 되어가는 고향은 이제 전국에 빈집으로 가득하다. 젊은 귀농인이 있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은 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부모님)의 상실(부재)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고향을 지키고 있을 때는 그래도 젊은이들이 드나들며 어머니와 함께했던 고향의 둥지를 손질하였지만,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고향의 둥지는 방치되어간다.

  

어머니의 상실과 함께 고향이 급격히 해체되는 데는 문명의 역할이 크다. 문명화가 가져다준 것은 자본과 상업주의이며 그 중심에는 도시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생존을 불편하게 하는 계륵(鷄肋)이다. 그것을 각자 개인에게 살려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제 어머니가 부재하는 고향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상실된 고향을 우리들의 마음에 승화된 새로운 세계로 태어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간 고향은 상실의 전형(典刑)이었다. 젊은 인기척도 없고 보리밭도 없고 나무만 무성해져 가고 있었다. 시인을 놀려 대던 그 많던 《종달새》도 어디로 가고 없었다. 어릴 적 어머니 품이 그립다. 자본과 도시화에 찌든 이 문명의 야만을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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