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시(詩)로 세상 읽기] 《다보탑을 줍다》 평범함 속에 보물 같은 삶을 찾아

가 -가 +

이상호
기사입력 2020-04-01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코로나19가 일상(日常)과 일터를 마비시켰다. 소득 공백이 생기고 소상인의 삶이 무너지고 도산 위기에 처하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세계를 강타하는 코로나19가 IMF보다 더 혹독한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100조 원 이상의 돈을 풀겠다고 한다. 100조 원이 어디로 갈 것인가? 만약에 일회성 소비에 그친다면 일시적인 경기 부양과 개인의 삶에 일시적 기쁨은 줄지언정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100조 원이 적은 돈인가? 우린 그 돈이 얼마나 많은 돈인가 계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속도로 하나 내는데 보통 3조 원 정도 든다고 하면 계산이 될까? 어쨌든 사람들은 위기와 절망에 서 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 후보들은 저마다 나라를 구하고 국민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선전을 해댄다. 그 선전의 뒤에는 상당한 꼼수와 구린내도 감추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영웅처럼 만들고 싶어 권력의지에 기대고 있다. 나는 다만 그들의 권력의지가 진실한 삶에 기초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위기의 세상에도 영웅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돈과 권력에 집착된 왜곡된 성공관과 행복관은 사람들을 더 위험한 곳으로 내밀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왜곡된 성공 신화에 매진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김형석 교수의 “100세 일기”를 읽다가 행복은 돈과 권력에 있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정직과 신뢰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있음을 느낀다. 이즈음 실의에 차 있거나 영웅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 같이 읽고 싶은 시가 있다.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1041〜 )- 

 

고개 떨구고 가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빠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 창비, 2004. 11쪽-

 

이 시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 게시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는 시인이 63세에 썼다고 한다.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대에서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진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었다. 10원짜리 동전, 쓸모가 있는 듯 쓸모가 없는 듯, 지금은 아이들에게 줘도 받으려 하지 않는 별 가치가 없는 10원짜리. 그런 동전을 자세히 보면서 인생을 회상하고 성찰한다.

 

시인은 왜 고개 떨구고 걷게 되었을까? 고개를 떨구고 걷는 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절망에 빠진 사람, 실의에 찬 사람, 좌절감에 빠진 사람, 실연을 당한 사람, 삶에 자신감을 잃고 고뇌하는 사람, 뭔가 의문에 빠져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 자의 모습 등 다양한 심상(心象)이 드러난 모습일 것이다. 또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고개를 떨구고 걷는 모습은 이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시인은 고개를 떨구고 걸으며 삶의 궤적(軌跡)을 더듬고 정신없이 살아온 자신을 성찰하며 남은 삶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에는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과 남은 삶에 대한 깊은 다짐이 묻어난다. 또 절망하는 삶에 대한 일종의 채찍이 느껴온다. 

 

시인은 10원짜리 동전을 줍는 순간 동전 속에 새겨진 다보탑(多寶塔)을 발견하고 다보탑에 얽힌 사연을 더듬었다. 10원짜리 동전은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다보탑은 국보 20호로 대단한 보물이다. 그래서 횡재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이제 10원짜리 동전이 아닌 다보탑에 생각을 집중했다.

 

다보탑은 어떤 탑인가? 다보여래의 사리를 모셔 둔 탑이다. 〚법화경〛 에 의하면 “부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이 경을 설파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둔 탑이 땅 밑에서 솟아나고 그 탑 속에서 소리를 내어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증명하였다”고 한다.(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 용어사전) 

 

시인은 10원짜리 동전 속의 다보탑의 세계에 몰입하여 삶을 성찰한다.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영취산은 깨달음의 산이다. 자신이 바로 그 영취산 어디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그저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그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자신을 겸허히 낮추면 어느 곳에서건 불국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인이 10원짜리 동전 속의 다보탑을 보며 상상하는 삶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다시 “정신을 차려”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 “다시 보면” 불국정토가 아닌 “빠알간 구리동전”이다. “빠알간 구리동전”은 녹슨 동전이다. 오래되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빛나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버려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시인의 나이도 예순을 넘긴 녹슨 구리동전 같은 삶이다. 현실은 늘 각박하고 삶을 고뇌하게 만든다. 그래서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가 있다. 현실은 녹슨 10원짜리 “빠알간 구리동전” 같이 별 쓸모가 있는 듯, 별 쓸모가 없는 듯한 삶이요 세상이다. 어찌 살라는 것인가? 별 쓸모없는 듯한 빠알간 구리동전처럼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매우 역설적이다.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이말 속에는 매우 강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시인은 10원짜리 동전 속의 다보탑을 보면서 삶을 새롭게 깨닫고 진하게 다짐한다. 별 쓸모없는 듯한 10원짜리 동전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 안에 새겨진 다보탑은 그런 평범한 삶 속에 깃들었지만, 평소에는 잊거나 생각지도 않은 보물 같은 삶의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10원짜리 동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이 삶 속에 깃든 보물 같은 삶을 잊고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면서 영취산 석존만 쫓고 법화경만 들먹였다. 행복과 진리는 분명 우리들의 일상에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데 헛것만 쫓아다녔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행복과 깨달음을 어디서 찾는가? 많은 사람이 평범함보다는 뭔가 도드라지고 빛나는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며, 그 속에 행복과 성공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과 행복과 성공은 그런데 있지 않다. 별 쓸모없는 듯한 10원짜리 동전 속의 다보탑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 자신이 찾지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보물 같은 삶에 있다. 그 삶의 알맹이는 분명 내 안에 존재한다. 우린 그것을 깨닫고 찾아야 한다. 

 

IMF 시절에 노동부에 근무하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아직 더 고생을 해봐야 해, 취업 교육을 무료로 시켜준다고 해도 오지 않아 와도 열심히 하지 않아.”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단순한 취업 기술이 아니야. 비전이고 희망이야. 절망을 딛고 서는 힘이야. 국가적 위기로 실의에 빠진 실직자에게 지금 그 컴퓨터 기술이 미래의 직업을 보장하지 않아. 배우면 정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비전이 있어야지. 그런데 그들은 지금 비전과 희망을 잃었어. 중요한 것은 국가와 정치인이 그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거야. 그리고 사람은 한참 동안의 실의에 빠져 자기를 추스르고 고뇌하는 시간도 필요해. 단순한 컴퓨터 취업 교육에 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야” 실직자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밥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전과 희망의 발견이다. 

 

좋은 학원과 학습 도구를 쫓아가는 아이의 부모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즈음에는 유명 학원이나 날이 갈수록 더 좋게 진화되는 학습 도구들이 판을 칩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부모들은 더 좋고 비싼 학원과 학습 도구를 찾아 투자하지요. 그것도 모자라 엄청난 돈을 들여 외국으로 어학연수도 보냅니다. 물론 효과를 보는 아이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학습 효과를 크게 얻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학습 기회와 도구가 모자라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끈질기게 배우고자 하는 내면의 열정과 노력이 발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모든 학습의 원동력은 비전과 열정 그리고 쉼 없는 노력이다. 그래서 엔젤라 더크워스(미국 펜실바니아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그의 책 『그릿(GRIT)』(김미정 옮김, 비즈니스북스)에서 성공하려면 ‘내 안에 그릿(GRIT)을 찾고 깨우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릿(GRIT)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이다. 그것은 내 안에 성공하려는 목표와 열정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노력의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성공의 정의를 ‘끝까지 해내는 힘’이라고 했다. 실의에 빠져 고개를 떨구고 걷는 자에게 우린 그 그릿을 찾아 주어야 하고 그 스스로 찾게해야 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을 떠났다. 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어 산모퉁이 외딴곳에서 잠을 잤다. 밤중에 갈증이 나서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셨다. 달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담긴 빗물이었다. 순간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깨달음이 번개처럼 다가왔다. ‘어젯밤에 먹은 물은 그토록 달았는데, 아침에 그 물이 해골에 담긴 빗물임을 안 순간 왜 이토록 구역질이 나는가? 아 그렇구나.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구나(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신라 불교의 큰 중흥을 이루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 깨닫는데 있다. 

 

시인이 고개를 떨구고 걷다가 주운 녹슨 10원짜리 구리동전은 그저 10원이지만, 그 안에 새겨진 다보탑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보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10원짜리 동전은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 온 시인의 삶임과 동시에 평범한 우리들의 삶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다. 이제 그 보물을 찾고 닦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돈과 권력 등에 집중한 외부로 향한 성공학이 너무 난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마치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여기고 자신을 비관하고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하지만 소박함 속에 열심히 살아가는 삶 속에 보물 같은 삶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만하지 말고 평범한 속에 고귀한 영혼이 숨 쉬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갈고 닦아 나가야 한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참 어렵다. 절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당장의 100만 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각자의 내면에 도사린 소중한 보물을 잃지 않고 찾게 하는 길이다. 정부와 정치인은 그 노력을 100만 원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나이들면서 이 시는 나를 새롭게 성찰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소중하며 내 안에, 내 주변에 다보탑과 같은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박완서의 이 말이 떠오른다. “소리없이 나를 스쳐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 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11쪽)

 

이 시가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삶을 성찰하게 하고 자기 안의 소중한 보물을 찾는 계기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평범한 삶 속에 보물 같은 삶이 도사리고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나서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