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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세한도 가는 길》 그 알발로 걷지는 못할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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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사입력 2019-10-16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괜한 걱정일까요? 지금 나라의 상황이 열강의 침탈과 이권개입이 극도로 달하는데도 정쟁으로 분열과 대립을 일삼다가 나라를 고스란히 악어의 입을 벌린 일본이 그냥 삼키게 한 구한말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온 촛불정신을 혁명으로 내세우며 등판한 진보 정권은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의 준엄한 명령인 주권수호와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의 소명을 다할 줄 알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초래한 보수 정당은 지난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제조업 지수가 10년 만에 최저에 이르고 생산성은 저하되며 민생은 파탄이라 할 정도로 어려워지는데 정치인들은 화해와 치유의 정치는커녕 극심한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둘러싼 서초의 촛불과 광화문 태극기는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다행히 조국의 사퇴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큰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모든 정치인과 국민은 정파를 초월하여 유안진의 시 세한도 가는 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가는 깊은 성찰의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세한도 가는 길

-유안진(1941)-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五十嶺)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유안진 봄비 한 주머니창작과 비평사>에서-

 

이 시는 삶에 대한 강한 성찰과 다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도적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세상을 향한 큰 충고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 시를 1998년 나이 57세에 썼다고 합니다. 이 시는 그에게 1998년 여름 <시와 시학사>에서 주관하는 제10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그 탄생의 이면에는 시대적인 강한 성찰과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엔 우리나라의 금융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97년 구제금융 시대 때 착상한 시인데요. 외환위기를 당해서 전 너무 무서웠어요. 겨우 집 사고 차 사고 살만하다 싶을 때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지 않나 무척 겁났거든요. 이런 두려움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자, 스스로도 귀양 보내 삶 자체를 검약하게 해야 한다는, 나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제 발의 핏자국을 찍어가며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사 선생의 9년 제주 귀양살이가 담기 절망 끝에 한 가지 희망을 그린 세한도로 유배 가는 기분이 되어 썼는데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재되어 수능에도 출제되나 봐요.” (김명원, 시인을 훔치다지혜, 2014, 65-66)

 

시인은 삶을 성찰하며 새로운 삶을 향한 정진을 다짐합니다. 지나온 날들은 어쩌면 서리 덮힌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의 날이었습니다. 시인은 오십령을 넘긴 자신을 서리맞은 기러기 죽지에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의 다른 시 경주 남산(南山)에 와서에서 묻노니, 나머지 인생도/ 서리맞은 기러기 죽지에/ 북녘 바람길이라면//차라리 /이 호젓한 산자락 어느 보살(菩薩) 곁에/ 때 이끼 따습게 덮은/ 바위로나 잠들었으면이라 한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삶을 돌아보니 오십령 고개를 넘어가는데, 그 오십령을 넘기는 삶도 여전히 서리 덮힌 기러기 죽지의 삶입니다. 갈 길은 많이 남았고, 이루어 놓은 일 특히, 자아실현과 인격적 성숙은 부족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아우성치면서 서로 비난하고 자신은 성찰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오십령(五十嶺)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나이입니다. 옛날에는 오십령을 잘 넘기면 장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즈음도 오십령은 중요합니다. 오십령이 지나면 대부분 직장에서 퇴직하고 제2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40대에 퇴직하여 사오정이란 신조어도 생겼으니 삶에서 특히 오십령은 중요한 고비의 나이입니다. 저 또한 오십령을 넘기고 퇴직하여 자연인이 되었지만, 아직 서리맞은 기러기 죽지의 삶에 머물러 방황합니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시인은 오십령에 공자를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공자에게 오십령은 천명을 아는 나이였습니다. 공자는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인생관이 확립되었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논어 위정(爲政)>라고 했습니다. 오십령을 넘기며 이순을 바라보는 시인은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고(六十而耳順), 일흔 살에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게(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되기>까지는 먼 길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시에서 말하는 오십령을 좀 비약하면 대한민국의 나이입니다. 1945년 건국된 대한민국은 시인이 이 시를 쓸 당시 53세로 막 오십령에 든 나이입니다. 그런데 그 오십령의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을 맞았고 국민의 삶도 처참해졌습니다. 시인은 개인이든 국가든 오십령에 접어들면, 더욱 겸허하고 올곧은 자세로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얼음장 위를 알발로 걷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가고자 하는 길은 오십령(五十嶺)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입니다. 평생을 민속과 전통의 뒤안길을 더듬던 시인은 이제 지고한 선비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인생을 꽃길이라 여기는 사람은 그 꽃길에 의해 좌절하고 말거나 꽃길의 낭만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하려면 삶의 여정을 성찰과 인내로 견디며 가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삶의 여정은 꽃길이 아니라 서리 덮힌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처럼 고달픈 인고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한순간의 꽃길을 위해 숱한 그믐밤을 서리 덮힌 기러기 죽지로 날아야 하는 것이 삶이며 행복의 추구인지 모릅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행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숱한 그믐밤을 기러기 죽지로 날며 인고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오십령을 넘기는 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은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받들며 세한행(歲寒行)을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길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면서 강한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남은 삶을 강한 성찰과 고행으로 이순(耳順)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를 이루고자 고독한 자기완성을 다짐합니다. 진정한 선비의 길은 차가운 겨울바람 유유히 서 있는 소나무처럼 지조를 지키며 세상을 응시하고 자신을 가꾸어가는 길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길만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시인은 그것을 앞에서 밝힌 창작 배경에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 정조 101856, 철종 7) 선생의 세한도(국보180)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자신과 시대를 성찰하게 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 세한도를 제주도 유배 생활 5년째인 59세에 유배 생활 중인데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찾아오는 제자 이상적에 대한 보답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내용 속에는 삶을 향한 강한 의지와 지조가 담겨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생애는 당시의 정치사만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훈척 가문(勳戚家門)인 경주김씨로 왕의 종친과 외척 관계였던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 등 벼슬을 두루 지낸 금수저였습니다. 그러나 1830(순조 30) 효명세자가 죽은 후 18348살의 헌종이 즉위하자 왕실의 두 외척인 안동김씨(김조순 가문)파와 풍양조씨(조만영 가문)파의 극심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1840(헌종 6) 세력이 커진 안동김씨 세력은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경주김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모함을 통해 김정희를 수차례 유배시켰습니다. 유배 중 가장 혹독했던 것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도 대정에서의 9년간의 유배 생활이었습니다. 추사의 제주도 유배는 유배 최고의 형벌인 위리안치(圍籬安置-집밖으로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치고 집안에서만 생활하게 하는 형벌)였기 때문입니다. 세한도가 그런 가운데 탄생했으니 그 안에는 자신의 외롭고 답답한 심정과 그런 와중에도 삶의 지조와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결의와 세상을 향한 부르짖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 선생은 그 세한행(歲寒行)의 삶에서 자기완성을 이루었습니다.

 

사람 사는 이치와 정치적 인간관계는 이해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사마천이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의 고사에서 말하는 문전작라(門前雀羅-대문 앞에 그물을 쳤다. 권세가 다하면 대문에 그물을 쳐 놔도 새가 걸리지 않는다. 즉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처럼, 퇴계 이황 선생이 말한 이진성로인(利盡成路人-이익이 다하면 길가에서 스쳐 가는 사람처럼 된다)처럼, 사람들은 권세가 있을 때는 문전이 닳도록 드나들지만, 정치적으로 죄인의 몸이 되면 그가 의롭더라도 찾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상태에서도 잊지 않고 중국을 오가며 서책을 구해 찾아가 문안하고 전하며 세상 물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중국을 다녀와 새로운 서책과 중국 등 세상 물정을 전해주는 이상적에게 추사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세한도歲寒圖라 제목을 적고 옆에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썼습니다. 우선(藕船)은 조선 후기 역관(譯官) 출신이자 시인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호()입니다. 그림의 이야기는 우선藕船 자네, 이 그림 감상해 보게로 시작하지요. 그리고 써 내려간 발문에는 논어(論語)의 자한(子罕) 편의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고 하였다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있는 한 사람인데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초연하게 벗어났으니” “그대는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귀양 온 후나 변함없으니 공자의 칭송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변함없이 찾아오는 이상적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가지고 중국으로 가서 여러 화가 문인들에게 보였고 그들은 세한도에 거듭 감탄을 하였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에 얽힌 사연과 내용을 보면, 지금 시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극심한 세력 다툼과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그로 인한 무고한 선비의 유배 등과 같은 일들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시인이 이 시를 썼던 구제금융 시기엔 그래도 온 국민이 구제금융을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를 하는 등 지혜를 모았고 정치인들도 뭉쳤습니다. 구제금융의 그 세한(歲寒)의 길에서 정치인과 국민의 상당수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걸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구제금융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고와 성찰의 겸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알발로 걷던 마음이 사라져 겸허함을 잃고 오만해졌습니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이란 세계적인 치욕과 세계사에 남을 만한 촛불 혁명, 그로 인한 새로운 정권의 탄생, 그런 혼란을 초래한 정권들은 모두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을 보듬고 새로운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기 위해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자기 프레임에 갇혀 상대와 화합하지 못했고 촛불정신은 퇴색되었으며, 보수 정당은 생존을 위한 성찰 없는 대립의 칼날 위에 섰습니다. 새 정권이 초기에 내세웠던 화합의 정치는 못 할망정 그런 정쟁 속에 국민까지 갈라지고 있으니 애통한 일입니다. 정치적 대립이 오래가면 민생은 파탄이 나고 국민 간의 골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국민은 시인의 <세한도 가는 길>을 가슴에 새기며 차라리 알발로 걷지는 못할망정인고와 성찰의 자세로 겸허하게 현 상황을 맞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상을 향한 절규를 이렇게 다시 전합니다. “구름도 먹구름 묵향 진동하고/파도도 추사체로 일어서다 무너지는 먹빛/유배 9년 동안 벼루 씻은 먹물 속에 이냥 뛰어놀다가/신필(神筆)의 기운 혹시 뻗쳐오르거든/ 젖은 몸뚱어리 그대로를 동댕이쳐/세상을 그냥 파지(破紙) 한장으로 뭉개버리고만 싶어/탱천하는 분노여/태풍아 몰려와라”(유안진 다보탑을 줍다창비, 제주도 대정 앞바다에서에서)

 

저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가라시는 세한행의 그 길을 가려 겸허히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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