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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은유와 여유의 결핍에서 온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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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2019-03-19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지난 일주일간 말에 관해 곱씹었습니다. 매일 아침 말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나를 성찰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가진 시집에서 읽고도 모자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매일 몇 편씩을 읽었습니다. 지난 주에 말이 세상을 뒤집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읽은 말에 관한 시 중에서 한 편 소개합니다. 오광수(1953~ ) 시인의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입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생활입니다

험한 말을 하는 생활은 험할 수밖에 없고

고운 말을 하는 생활은 고와집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이웃입니다

친절한 말을 하면 모두 친절한 이웃이 되고

거친 말을 하면 거북한 관계가 됩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미래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실패만 되풀이됩니다

말 한마디에 이제 당신이 달라집니다

예의 바르며 겸손한 말은 존경을 받습니다

진실하며 자신 있는 말은 신뢰를 받습니다

    

말은 인격의 표상이자 소통의 문이며 인간관계의 끈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만 험한 말을 하면 험한 사람이 됩니다.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했듯이 친절한 말은 친절한 이웃을 만들고 거북한 말은 거북한 이웃을 만듭니다. 하는 말에 따라 자신의 미래는 물론 이웃 관계도 달라집니다.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진심이 있는 말은 존경과 신뢰의 샘물입니다.

 

황금찬 시인(1918~2017)이 “사람아/입이 꽃처럼 고아와라/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라 했듯이 말은 입이 곱고 미운 것을 대변하여 줍니다. 말을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며 존경과 신뢰를 쌓는 사람에게는 은유와 여유 그리고 정체성이 숨어있습니다.

    

오랜 갈등을 봉합하고 어렵게 연 3월 국회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설로 다시 대결과 파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2일 나경원 의원은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가짜 비핵화” “반미,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며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외교․안보 라인을 교체하라.” 했습니다. 이때부터 여당 의원들의 심기는 불편했는데 뒤이은 말이 뇌관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낮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에 더민주당 의원들은 폭발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만하라”는 등의 고함이 나왔고 문희상 의장이 “계속하라”고 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하라”며 항의했습니다. 일부 의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장석으로 뛰어 올라가 문 의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고, 한국당 의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도 있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책상을 치며 “경청, 경청”을 외쳤지만, 더민주당 의원들이 “사과해”를 연발하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30여 분간 연설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국회는 파행이 되었습니다. 여당의 이해찬 대표는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고발 하겠다” 했고, 청와대도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작년 9월 26일 미 블룸버스통신 기사 제목인 ‘문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 이 됐다’는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있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무엇을 얘기한다는 거냐(황교안 대표)”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미 30년 전에 삭제된 조항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냐(이만희 원내 대변인)”고 하면서 맞받아쳤습니다.

    

정치인의 말은 창과 방패일 때가 많습니다. 이번 국회 연설과정에서 나경원 원대 대표의 연설은 아마 더민주당과 청와대를 찌르려고 작심하고 준비한 창이었습니다. 연설 후 더민주당이 어떻게 나올까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연설을 끝내고 나올 때 나 의원은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면서 의기양양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잘했다”며 박수를 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민주당은 제대로 된 방패를 갖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니 단상을 점거하고 고함을 지르며, 이미 30년 전에 자기들이 중심이 되어 폐기한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며 흥분한 것입니다. 더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습니다. 

    

말은 중요한 소통의 도구이지만 때로는 강력한 소통의 장벽이기도 합니다. 소통을 위해 만났지만, 말 때문에 영원한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의 말엔 강한 뼈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수사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말은 은유와 여유를 간직할 때 충돌을 피하고 상대를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나경원 원내대표의 연설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은유가 부족했으며, 이해찬 대표를 포함한 더민주당 의원들은 여유가 부족했음을 드러냈습니다. 양쪽 다 창과 방패만 가지고 휘둘렀던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영국의 처질 수상이나 미국의 링컨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 등에게 사사(師事)라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창보다 더 날카로운 야당 의원들의 비수에도 유연하게 대하며 상황을 풀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은유와 여유가 충만했습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듯이 농담이던, 진담이던, 유머건, 말에는 늘 뼈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뼈는 감춰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할 뿐입니다. 말은 상황에 따라 달리 포장되기 때문에 화자(話者)와 청자(聽者)는 말의 뼈를 잘 새겨야 합니다. 말은 항상 상황에 따라 재탄생되고 재해석되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말도 상황을 잘못 만나면 나쁜 말이 되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만, 나쁜 말도 약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화자와 청자가 가진 언어와 상황에 대한 선입견과 습관의 탓이기도 합니다.

 

특히 청자의 선입견과 수용의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나쁜 선입견을 가지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거나 비수로 다가옵니다.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 했듯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화자의 말과 청자의 반응은 달라집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는 습관의 반영”이라 했듯이 말은 습관의 지배를 엄청나게 받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릴 때부터 말의 수사학 특히 은유와 여유를 배우지 못한 탓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말에 은유와 여유가 부족한 것은 정체성의 혼돈 탓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은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것이며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이 혼돈되면 당황하거나 막말을 하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정체성이 부족하면 은유와 여유를 잃어버리기 쉽지요. 반면에 은유와 여유가 부족하면 정체성의 혼돈을 가져옵니다.

 

따지고 보면 자유한국당은 정체성의 조급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유보다는 직격탄을 날린 것이지요. ‘대통령이 수석 부대변인’이라는 말을 할 때, 최소한 외신인 블룸버그통신을 인용한 것이라고 언급했다면, 반응은 좀 달랐을 것입니다. 특히 더 민주당은 정체성의 불안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직격탄을 맞고 정신 차려 대응하기보다는 흥분반응을 한 것이지요. 흥분하면 불리해지는데 흥분한 것입니다. 종북, 반미, 특히 문 대통령의 북한 옹호 등에 대한 비난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자기들의 노선과 철학이 확실하면 여유를 가지고 대응했을 것입니다. 연설 현장에서 고함을 지르고 국회의장 단상을 점령하고 30년 전에 사라진 법까지 들고나온 것은 그것을 말해 주지요. 하기야 우리나라 거대 두 정당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체성이 부족하기에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하고 당명(黨名)도 수시로 바꾸는 것이지요.

    

1994년 10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주민투표 187호’를 떠올립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재정문제로 불법체류자와 그들 자녀에 대한 복지혜택을 대폭 박탈하는 주민투표제안 187호에 대한 투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7만 명이 넘는 멕시코인들은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멕시코 깃발의 바다’란 명칭 아래 멕시코 국기를 들고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그들이 멕시코 국기가 아닌 미국 국기를 들고 행진하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안 멕시코 인들은 2주일 후 더욱 많이 모여서 이번에는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든 채 대규모 거리행진을 했습니다. 이 국기 사건은 주민투표제안 187호에 캘리포니아 주민의 59%가 찬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연방법원에서 위헌으로 판결을 받아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 내에서 멕시코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그들을 이웃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 600만 이상, 캘리포니아주에는 1,000만 명 이상의 멕시코 인들이 미국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그들을 이웃으로 인정한 결과입니다. 은유와 여유 그리고 정체성의 회복이 준 쌍방 승리이지요.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정치인들의 정체성의 혼란과 은유와 여유의 부족을 여실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서 그것이 부족하면 갈등과 파장을 가지고 온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딥딘(Michael Dibdin)의 소설 『죽음의 못(Dead Lagoon)』에서 베네치아의 민족주의 선동가가 “진정한 적수가 없으면 진정한 동지도 있을 수 없다.”고 했듯이, 세상사 특히 정치에는 적과 동지가 늘 존재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항을 적과 동지로만 보고 공격과 방어로만 일삼으면 2차대전 후 뿌리 깊었던 냉전 시대처럼 암울한 대결뿐입니다. 그러나 화해와 초월을 발휘하면 냉전의 종식을 가져오고 해빙한 것처럼 세상은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정치도 냉전을 종식하고 화해와 초월로 서로를 존중하는 해빙의 정치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래야 국민도 해빙될 것이니까요. 여기엔 말을 포함한 모든 행위에서 은유와 여유 그리고 정체성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번 연설 사건은 은유와 여유의 부족에서 온 충돌입니다. 오광수의 <좋은 말을 하고 살면>이 다시 새겨집니다.

기사입력 :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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