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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첫사랑》 그 기억의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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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사입력 2020-02-27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개학과 신학년, 신학기가 다가온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개학과 입학식이 연기되었다. 설령 개학과 입학식을 한다고 해도 모여 축하하는 풍경보다는 서로 조심하는 풍경일 것 같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방학의 추억과 마음에 품은 우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안쓰럽다.

 

 

첫사랑 

-이숙(자영)-

  

반장은 특별해 보였다 

또래보다 큰 키 공부 행동 

난 어렸으니까 

 

나의 첫사랑은 

학년에 바뀌고 

반이 바뀌자 끝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짝사랑 

혼자 몰래 가슴에 심고 

콩닥콩닥 

어리 날의 추억 

 

-이숙 시집 <사랑의 힘>에서-

 

 모든 이에게 첫사랑은 실현하지 못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언덕이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이며 그 아련함과 안타까움이 상실될 것 같은 기억의 아픔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첫사랑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을 뿌리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시는 늘 우리를 특수에서 또 다른 특수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력을 지니게 한다. 첫사랑도 그렇다. 실현하지 못한 첫사랑은 더욱 기억의 저편에서 솟아난다. 만약 그 첫사랑이 현실로 되었다면 그것은 첫사랑일 수 없다. 실현되지 못한 첫사랑만큼 아련히 기억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테니까? 

 

프로이드식으로 말하면 첫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다. 아름답고 기쁘고 즐겁고 슬프던 그것은 영원할 수 없기에 아련한 각인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사랑은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늘 숨 쉬다가 어떤 게기를 만나면 의식의 수면 위로 떠 올라 상상 속에서 기억의 언덕을 헤매게 한다. 그것은 새로운 에너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가슴앓이로 남을 수도 있다. 삶을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자는 그 첫사랑을 아름답게 승화해 가는 언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반장이 되었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누룽지를 한 웅큼 주셨다. 그리고 속으로만 웃으셨다. 그날 엄마의 발걸음과 몸매는 날렵했었다. 엄마는 누구나 그렇다. 우리 엄마는 딸이 반장이 되었을 때 날아갈 듯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은 누가 시샘이라도 할까 두려워 가슴에 깊이 간직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침묵했다. 그래서 엄마의 딸에 대한 자긍심은 또 다른 엄마의 특수이자 모든 엄마의 보편이다. 

 

해가 바뀌니 반장도 끝이다. 그 후론 자랑스러움과 빛남이 가슴에 남아 뛰고 있을 뿐이다. 나도 그랬다. 반장이 되었을 때 첫사랑의 마음처럼 뛰었고 자랑스러웠다. 나의 가슴에도 엄마의 가슴에도 첫사랑처럼 뛰고 또 뛰며 숨죽였다. 몰래 간직한 어린 날의 그 설렘은 첫사랑처럼 갈피에 남아 기억의 언덕에 잠자고 있을 뿐이다. 

 

어린 날의 추억은 영원한 회상이며 각인이다. 그것은 때론 삶과 감성의 쇄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첫사랑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첫사랑은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신비로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기억의 저편 언덕 벤치에서 김이 나는 차 한잔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겠다. 

 

반장이 아니면 어떠하랴. 해가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고 또 다른 꿈을 안고 또 다른 꿈을 새기며 뛰는 가슴으로 맞이하는 즐거움은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너무도 큰 자부심이며 에너지일 것이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아이들의 성장에는 첫사랑처럼 강한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3월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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